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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팟캐스트] 눈누난냐 시즌 1/└ 눈누난냐 시즌1 - 외전

외전 EP.15 - 버닝(burning), 나름의 해석(팟캐스트 방송)

by 눈누난냐 맹뚜 2020.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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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타다닥 눈누난냐의 맹뚜와 두치아빠 입니다!

이창동 감독님의 '문제적 작품'이라고 불리는 영화 <버닝>. 젋은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미스터리한 영화로 표현하면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2018년도 칸에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받은 작품으로, 예술적으로 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상상이 현실이고, 현실이 상상인가?🎥

이 영화는 148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끊임없이 우리들을 집중하시게 만드는 장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뼈대도 튼튼하며, 그 뼈에 달라 붙는 살들이 만들어내는 볼륨감이 엄청나다.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업은 처음에 뭔지 모를 것들이 잔뜩 나열되고, 이것들이 나중에 차근차근 질서있게 정렬되어 여러 궤도를 완성시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앞에서 깔아둔 장치들이 후에 등장하는 것들을 설득시키고 빈틈을 깔끔하게 메워주는 역활을 하는 등, 이야기가 난해하지 않고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오늘은 이전에 버닝(burning)의 리뷰에서 다루지 못했던, 타다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해석해보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달해드릴 수 있을까요?


영화 버닝(Burning)을 타다닥의 시선으로 해석하다.

두치아빠 & 맹뚜가 알려주는 영화의 새로운 시각

 

1. 각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구도, 이를 통한 사회 비판적 시선

👉 종수를 통한 사회적 비판

작가를 꿈꾸지만 뚜렷한 돈벌이도, 열중하는 일도 없는 꿈도 희망도 없는 청년 종수. 농사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농사 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을 쓰는데 열심을 다하지도 않는, 딱 평범하디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런 종수가 처음으로 글에 칭찬을 받은 일은, 아버지를 위해서 탄원서를 쓴 내용이었습니다. 글쓰는 능력은 있지만, 그것에 열정을 다하지 않는, 지금 우리사회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잘 녹여낸 것 같습니다.

 

종수는 현대사회의 젊은세대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야근과 특근이 가능하냐고 묻는 직장에라도 취직하려다가 관두는 모습에서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종수는 자신의 가치를 유일하게 알아주는 사람은 해미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자기 자신을 자위하듯이...

 

이처럼, 종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오늘날의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미성숙한 현대 사회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미를 통한 사회적 비판

해미는 자유롭게 일하며 돈을 벌고, 자신의 꿈을 가지고 실현해나가는 청년입니다. 그녀는 판토마임을 배우고, 자신이 가보고 싶었던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작은 방에서 살고 있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해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직은 돈이 없어서 북향에, 남산타워에서 반사되어 비치는 햇빛을 잠시 받는 집에 살고 있지만, 그런 어둡고 그늘진 곳이라도 매일 작은 희망을 기대하면서 살아가고 있죠.

 

해미는 현대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가령 배고프고 힘들더라도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여줍니다. 해미가 이야기 하는 <그레이트 헝거>와 <리틀 헝거>는 힘들고 지친 현실에서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더 밝은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미를 통해서 이창동 감독님은 진짜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리틀헝거의 삶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만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추구하고 나아가라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벤을 통한 사회적 비판

벤은 지금까지 나온 종수, 해미와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집과 비싼 차, 노는게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은, 종수와 해미에게는 완벽하게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종수처럼 자신의 직업을 변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물질적인 여유가 넘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벤은 성공한 기성세대 부모님을 두고 있는 돈많은 상류층의 자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수와는 대조적인 포지션을 보이고 있으며, 영화가 진행되는 부분에서도 종수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런 여유가 넘치는 벤은 부족함이 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기 때문에, 약간 이상한 취미를 가지게 됩니다. 벤은 당당해보이는 여자와 친구가 되어 자신의 친구과 이야기를 하게 하는 등,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2달에 한번씩 낡은 비닐하우스를 불로 태워버린다는 비밀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있지요.

 

이런 비밀이 가득한 벤은, 타인을 경계하는 모습도 전혀 없기 때문에, 순수한것인지 아니면 비밀스러운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세 명의 인물들은 각 사회적인 구조를 대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벤은 돈 많은 상류계층으로, 해미는 그들을 위한 유희로 전락하는 인물, 종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최하층민.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수의 트럭과 벤의 포르쉐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런 대비적인 부분을 잘 표현해주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이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가지고 있고, 현세대의 젊은이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니,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불공평하게 보이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영화적인 표현으로 잘 이끌어나갔다고 생각한다.

 

또한, 벤과 어울리는 해미를 종수가 부러워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결국 종수도 상류사회를 부러워하고 있으며, 그곳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사회의 젊은세대가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고, 그들같이 살고 싶어 하지만 상류층을 욕하는 이중성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2. 빛을 이용한 인물의 다양한 태도와 의미

버닝(Burning)에서 빛은 굉장히 중요한 역활을 하과 동시에, 각 인물들이 그 빛을 바라보는 태도 또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인물별로 빛은 어떤 것을 상징할까요?

 

종수는 빛이 있건 없건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에도 불빛을 거의 켜지 않고, 대낮에도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죠.

 

해미는 자신의 영역에 빛을 들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북향에 어두운 방에서도 남산타워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마저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종수에게도 알려주는 역활을 하죠. 종수는 그런 희망에 빛을 알게되고, 해미의 집에서 자위를 하면서 자신도 그 빛을 따라갈 수 있는 "삶의 상징"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벤은 빛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작중에서 강한 햇빛이 비추고 있으면 선그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동차는 햇빛을 차단하는 선탠까지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빛을 차단하고, 거부하고 싶어하는 모습처럼 보이죠. 

 

영화 장면중에서 세명의 주인공이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석양이 지는 모습에서 해미는 자신의 공허한 삶의 무의미를, 종수는 자신이 해미가 벤과 같이 있는 모습에 질투하고, 벤은 그런 무의미한 시간마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하죠. 

 

영화에서 빛은 각 인물이 희망과 꿈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수는 꿈도 희망도 없음을, 해미는 희망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벤은 그럼 희망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3. 고양이, 보일이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 영화를 보시면 고양이 "보일이"가 '정말로 실존했던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됩니다. 물론 후반부에 그에 대한 떡밥을 회수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라는 존재는 영화에서 나름 의문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해미의 부탁으로 매일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종수, 그러나 그는 고양이의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수도 영화를 보는 우리와 같이 '고양이가 없는거 아니야? 해미가 말했던 판토마임과 같은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런 고양이가 영화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벤의 집에서입니다.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고양이를 우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던거죠.

 

영화에서 제일 미스터리한 존재였던 고양이. 물론 이 고양이가 "해미의 고양일까?"하는 의문점이 머리속을 지배하지만, 고양이가 주차장으로 뛰쳐나가, 종수가 "보일아"라고 부르고 다가왔을 때에, 종수와 우리는 해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다만,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지만...


4. 우물, 진실일까 거짓일까?

영화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우물>입니다. 해미는 우물에서 빠져 죽을뻔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우물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이 종수라고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그녀를 구해줬다고 하는 종수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해미가 사라진 이후, 종수는 우물과 비닐하우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미와 연관되고 자신과 연관된 사람들에게 우물의 존재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마을 이장님과 해미의 가족들은 우물이 없다고 주장하고, 종수의 어머니는 우물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그 우물이 마른 우물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우리가 영화를 보는 순간에 "그래서 우물이 진짜 있었다는 건가?" 하는 의문점이 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필자 생각에는 우물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수와 새로운 것들로 연결되기 위한 하나의 거짓된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우물은 젊은 세대들이 '현실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물론 감독님만이 이것을 아시겠죠.


5. 벤은 정말로 해미를 해친것일까? 비닐하우스는 뭘까?

영화 마지막에 종수는 벤을 죽이게 됩니다. 종수는 벤이 해미를 해쳤다고 생각해,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물론 해미가 정말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심경의 변화를 느껴서 잠적한 것인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 입니다. 

 

종수가 벤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해미에게 걸려온 이상한 전화 한통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그녀를 쫒는게 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종수는 벤을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자신만에 증거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비닐하우스는 해미와 같은 여성들을 단편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수 있고, 사회에 막연하게 퍼져있는 분노를 지닌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 있죠. 필자는 비닐하우스를 해미와 같은 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벤은 2~3달이 지나면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실존하는 비닐하우스인지, 아니면 그것이 여성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흐름상으로 봤을 때, 여성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종수는 벤의 말을 듣고, 비닐하우스를 매일 같이 확인합니다. 그런 종수에게 벤은 "너무 진지하지 마요, 재미는 추구하는 거니까."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마치 벤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것이 놀이고 재미라고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죠.

 

벤이 해미를 해쳤다는 증거는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종수의 시선으로 의심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죠. 비닐하우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도록 영화가 흘러가죠. 이는 현실에서 젊은세대들이 끈임 없이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을 향한 분노를 표현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도 알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정말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지.금.까.지

영화 버닝(Burning)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버닝은 몇번이고 봤는데, 지금도 정확한 의미를 해석하기 어렵고, 보는 사람들에 따라서 영화의 해석이 너무 다양해지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과연 영화는 우리에게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마치 해미가 했던 판토마임처럼, 필요한 만큼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게 아닐까요? 아니면 진실을 말하더라도 진실임을 입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걸까요?

 

또한 영화에서 종수가 표출하는 분노가 암담하고 희망도 없는 세상을 향한 분노인지, 벤처럼 특정한 계층의 인물들을 향한 분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도 포인트 입니다. 그저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 이런 불분명한 내용들은 해석을 보지 말고, 직접 영화를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가 마지막을 향하기 전에 종수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로 인해서 영화는 종수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나오고 있죠. 마치 액자 속에 액자가 있는 듯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를 아직 못보진 분들은 꼭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보시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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